- 근육은 '빠지는' 게 아니라, '반응이 둔해지는' 것이다
- 근감소증의 메커니즘 이해하기

인슐린 저항성이라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당뇨는 물론 만병의 근원이라고해서 최근 주목받는 그 개념이죠.
그런데 우리 근육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생긴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의학용어로는 동화저항성(Anabolic Resistance).
동화란 몸이 영양소를 재료 삼아 근육 단백질을 합성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반대로 이화는 근육 단백질을 분해하는 과정입니다.
동화저항성이란, 이 합성 과정이 둔해지는 현상을 뜻합니다.
해외에서는 작년(2025) 한 해에만 수십 편의 논문이 발표된, “근감소증” 연구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 개념을 제대로 다룬 콘텐츠는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30대 이후, 근육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숫자 하나만 기억하겠습니다.
30세 이후, 10년마다 근육의 최대 8%가 사라집니다.
아무것도 안 해도요.
계단을 올라가는 게 좀 힘들어졌다거나, 무거운 장바구니를 드는 게 예전 같지 않다거나, 오래 서 있으면 다리가 후들거린다거나. 같은 동작을 하는데, 예전보다 동작이 자연스럽지 않고 어설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죠. 이런 게 단순한 체력 저하가 아니라 근육이 줄어서 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현상에 질병 코드를 부여했습니다. 정식으로 이름을 붙여준 것이죠. 근감소증(Sarcopenia). 한국도 2021년 정식 질병으로 분류했고요.
"운동하세요, 단백질 드세요."
병원에서도, 유튜브에서도, 뉴스에서도 이 말뿐입니다. 그런데 정작 '왜' 줄어드는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근육은 매일 부서지고, 매일 다시 지어진다
우리 근육은 매일 만들어지고, 매일 부서지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전체 근육의 1~2%가 분해와 동시에 합성되어 우리의 몸이 됩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왜 부서지는 걸까요? 그냥 계속해서 만들어지기만 하면 안 되는 걸까요?
사실 부수는 것도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근육은 매일 쓰면서 미세하게 손상됩니다. 망가진 단백질이 되는 거죠. 제 기능을 못 하는 세포 부품들이 생겨요. 이걸 그대로 두면 근육의 질이 나빠집니다. 그래서 몸은 매일 낡은 부분을 부수고, 새로운 재료로 다시 짓습니다.
일종의 리모델링입니다.
젊을 때는 부수는 속도만큼 짓는 속도도 빠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과정 덕분에 근육이 더 좋아지죠.
문제는 나이가 들면서 짓는 속도는 느려지는데, 부수는 속도는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더 빨리 사라진다는 겁니다.
매일 10을 부수고 10을 짓던 몸이, 어느 순간 10을 부수고 7만 짓게 됩니다. 하루 차이는 3이지만, 이게 365일, 10년이면 엄청난 격차가 됩니다.
이게 근육이 사라지는 진짜 구조입니다.
그러면 왜 짓는 속도가 느려지는 걸까?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동화저항성입니다.
우리 근육 세포 안에는 "근육을 만들라"는 명령을 받는 스위치가 있습니다. 아미노산이 들어오면 이 스위치가 켜지고, 단백질 합성이 시작됩니다.
젊을 때는 이 스위치가 예민해서 조금만 자극해도 스위치가 확 켜집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이 스위치가 둔해집니다. 같은 자극을 줘도 잘 안 켜져요. 더 세게, 더 많이 눌러야 겨우 반응합니다.
동시에, 반대편에서는 근육을 부수는 시스템이 오히려 활발해집니다.
만드는 쪽은 둔해지고, 부수는 쪽은 활발해지고. 이 격차가 매일, 조금씩, 수년에 걸쳐 벌어지는 겁니다.
당뇨에 비유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근본 원인이 되는 ‘인슐린 저항성’이란, 인슐린은 나오는데 세포가 반응을 안 하는 거죠. 동화저항성도 똑같은 구조입니다. 영양소는 들어오는데, 근육이 반응을 안 하는 겁니다.
당뇨가 인슐린 저항성 때문에 일어나는 것처럼, 근감소증은 동화저항성 때문에 일어납니다.
동화저항성을 악화시키는 세 가지
이 동화저항성을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 신체 비활동. 움직이지 않는 몸. 이게 가장 큰 원인입니다. 안 움직이면 스위치가 더 둔해지고, 스위치가 둔해지면 근육이 빠지고, 근육이 빠지면 더욱더 움직이지 않게 되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둘째, 만성 염증. 나이가 들면 몸속에 낮은 수준의 염증이 계속 유지되는데, 이러한 염증들이 근육을 만드는 신호를 방해합니다.
셋째, 호르몬 변화. 근육을 유지하라는 호르몬 신호 자체가 약해집니다.
이 세 가지가 겹치면서 동화저항성이 깊어지는 겁니다.
되돌릴 수 있다
2025년 최신 리뷰 논문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동화저항성은 되돌릴 수 있습니다.
가장 강력한 도구는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 근력 운동. 근력 운동을 하면 둔해진 스위치가 일시적으로 다시 예민해집니다. 적절한 운동 후 1~2일동안에는 같은 영양소에도 근육이 더 잘 반응하게 됩니다. 운동의 진짜 효과는 근육을 직접 키우는 게 아니라, 근육이 영양소에 반응하는 능력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둘, 단백질 분배. 총량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나눠 먹는 겁니다. 한 끼에 몰아서 먹는 것보다 매 끼니 골고루 분배하는 게 둔해진 스위치를 여러 번 자극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핵심 키워드, 한국에서는 거의 전무
동화저항성은 해외 학술계에서 근감소증 연구의 중심에 있는 개념입니다. 2025년에만 Asian Journal of Kinesiology, International Journal of Molecular Sciences, Clinical Nutrition, Frontiers in Aging 등 세계최고 수준의 신뢰를 받는 저널을 통해 리뷰 논문이 다수 발표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어로 이 개념을 다룬 대중 콘텐츠는 사실상 전무합니다. 서울아산병원, 분당서울대, 고려대 등 주요 병원의 근감소증 교육 자료에서도 동화저항성이라는 용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근감소증은 "단백질 섭취 저하, 운동량 부족"이 원인이라는 설명에 머물러 있죠.
"무엇을 하라"는 말은 넘치는데, "왜 해야 하는지"를 기전 수준에서 설명하는 콘텐츠가 없었습니다.
이 블로그가 그 빈 자리를 채우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정리해볼까요?
근육은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매일 일어나는 “분해와 합성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불균형의 핵심 원인이 동화저항성 — 근육이 영양소와 운동 자극에 둔감해지는 현상입니다.
이건 되돌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되돌리는지,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
참고 문헌
• Volpi et al. (2004). Muscle tissue changes with aging. 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
• Kim et al. (2025). Unraveling Anabolic Resistance in Sarcopenia. Asian Journal of Kinesiology
• Sarcopenia: Current Insights (2025). International Journal of Molecular Sciences, 26(14)
• Therapeutic advances in sarcopenia management (2025). Clinical Nutrition
• Molecular constraints of sarcopenia in the ageing muscle (2025). Frontiers in Aging
• Maastricht University — Luc van Loon 연구팀 보도자료
(이 글은 의학적 조언이 아닌 연구 해설입니다. 개인의 건강 문제는 전문의와 상담하세요.)
RefamerLab.com "논문으로 읽는 몸의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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